소도둑을 보고 경찰이 왜 소를 훔쳐갔느냐고 추궁하니 썩은 새끼 줄이 보이길래 잡고 따라갔더니 새끼줄 끄트머리에 소가 한 마리 매달려 있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나 역시 노후 소일거리로 토지를 조금 마련해둔다고 한 것이 공교롭게 단감나무가 몇 포기 심어져 있었는지라 초창기에는 베어낼려고 하다가 이웃에 살고있는 동네 주민 중 한 사람이 자기가 경작해보겠다고 해서 그리하라고 했는데 임료쪼로 가을에 단감 두어박스 주겠다는 말에 오기가 생겨 주말을 활용하여 직접 경작한 것이 어언 1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첫 해에는 이웃에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져 가며 좌충우돌  개척자 정신으로 경작을 시작하여 농약을 살포하기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농사일이 어렵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7,8월 되약볕 아래서 농약3통(25말들이)을 살포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이다.

 

아래와 위 우의를 입고,안경,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작업을 했는데,약통등이 있는 본부석에는 아내가 나의 신호에 따라 전원을 켰다,껐다해야하는 경우가 생길 때에는  거리가 멀어 아무리 큰 소리로 고함을 쳐도 듣지를 못해 처음에는  휴대폰을 이용하다가 고가품이라 땀에라도 젖을까 싶어 "TV드라마 하이킥"에서 무전기를 쓰는 것을 보고는 무전기를 사서 쓰기도 하였다.그 놈의 모터는 왜 그리도 자주 멈추는지 차거운 물수건으로 모터의 본체를 냉찜질을 해가면서 겨우 마칠 때 쯤이면 장화속에는  복숭아뼈까지 땀이 차오르곤 하였다.

지금은 모터도 전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친구가 무슨 장치를 해줘서 한 번도 끊기지 않게 개선되었고,아내가 TV광고에서 얼음쪼끼가 있다는 것을 보고는 구입해서 어무리 더운 여름철이라 하여도 더운 줄 모르고 하니 굳이 전원을 끄라,켜라할 일도 없으니 무전기도 필요없게 되었다.  

 

그리고 첫 해에는 농약도 무슨 약을 쓰면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라서 농약방에서 주는 대로 살포를 했는데 그것이 또 말썽을 부렸다.

처음 짓는 단감농사라 감꽃이 진후 맺현던 열매가 금방 굵어져 주인을 보고는 방실방실 웃는 것같아 사진도 몇캇 찍어놓을 때라 모든 것이 신기했는데,그 날도 농약방에서 주는 대로 농약을 살포한 후 다가오는 첫주말이 되어 농장엘 갔었는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감나무 잎이 어딘가 모르게 생기를 잃으 것 같았다.그리고 조금 있다가 점심 때가 되니 나무잎이 주루룩 거의 모두가 떨어져 버린다. 아무래도 지난 번 살포한 농약 탓인 것 같아  이리저리 물어보니 원인은 농약이라고 다들 같은 의견을 내 놓는다.농약방에 전화를 하니 주인 내외가 농장에 찾아왔다.

가을에 군 말없이 보상해 준단다.아내는 무슨 약정서라도 받아 두자는 것을 상대측에서 아주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길래 야박할 것 같아 그냥 믿고 그 사람들을 보냈다.그런데 막상 가을 수확철이 되어 단감을 수확해보니 수확량이 전년도의 20% 정도 밖에 안된다.그래서 당해 농약방에 가서 얘기하니 처음과는 정 반대의 말들을 하고 있다.

다행히 피해를 입기 전,후 의 사진이 남아있어,그 해의 평균 가격,전년도 경작자의 평균 수확량등 을 정리해둔 상태라서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농약방측에서 아니나 다를까 법대로 하란다.

"맞아요 잘 얘기했습니다.그렇잖아도 소송준비를 해둔 것이 있는데 보기나 한 번 보세요" 준비된 서류를 보여 주었더니 군 말 없이 산출금액의 절반 값에 합의를 보잔다. 나야 뭐 첫 농사이고 당시만 하여도 빵빵한 회사에서 적지않은 월급을 받고있는 처지이라 도리어 상대측이 괜스레 측은하게 여겨졌다. 마음 변하기 전 시원하게 주겠다 할 때 받고는 마무리 지었다.그 때 약 이름이 베ㅇ랑이다. 

 

옛날에는 풍년이 들면 이유없이 좋아라 하였고,풍년들기를 기원하곤하였지만 지금은 농사라는것이 풍년드는 것이 두렵기만 하고 원망스럽기만 할 뿐이다.이제는 풍년이 농부를 더 이상 행복하게 하지않게 되었다.오늘 뉴스에 보니 제주밀감 가격이 전년대비 폭락하였고,사과,배가 풍년이되어 가격이 하락하였고,단감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몇일 전 단감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동차를 손 볼 일 있어 정비소엘 갔더니 단감농사를 하는 내외가 정비소에 왔다.그런데  안주인의 차림새가 첫눈에 보아서 전혀 여성의 꾸밈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그기에다 벙거지모자까지 착용하고있어 본인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깡통만 한 개 손에 들면 흡사 각설이 스타일이다.아내 역시 얼마 전 작업하던 차림으로 읍내 볼 일 보러 간 길에 제빵가게에 들러 빵을 한 개 살려는데 주인이 맨손으로 빵을 집어주기에 호되게 교육을 시키고 왔다는 얘기를 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어려운 입장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 풍년을 맞게되면 그것이 도리어 재앙이되어 돌아오는 농촌의 현실을 안다면 귀농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사리 뇌까리며, 뭐 여의치 않으면 농사나 지으러 간다는 둥 하는 것이 진정한 농업인에게는 모욕을 주는 말은  아닌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귀촌을 맘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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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목안이 따끔거리는 것이 감기가 올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콧물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머리도 띵한것이 감기균인 적군과 백혈구인 아군이 더디어 전쟁을 시작해서 부상병과 전사자(戰死者)가 생기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봤자 오늘 농장에 가면서 새참거리 막걸리를 아니 살 수야 없지..

약국에 가는 대신 마트에 들러서 막걸리를 2병 샀다.그런데 걱정이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감기몸살 증세가 있으면 단감을 딸 때와 박스포장 작업을 할 때엔 정신통일이 되어야 되는데 지장이 될까봐 다소 신경은 쓰였다. 주사위는 이미 던저졌으니 어쩔 수가 없다.감기약을 사면서 막걸리를 사면 술에대한 예의도 아니지만 마누라도 그냥 있지를 않을테니 별 수 없는 일 아닌가?

 

농장엘 도착하자마자 배나무에서 어린애 머리통만한 배를 1개 따서 깎아먹은 후  얼마전 준비해둔 양파엑기스를 1봉지 입가심으로 먹어두고는 준비해 간 새참을  한 모금 먼저 가불했다.

평소 줏어들은 상식으로 배,양파,도라지등 흰색의 과채류가 호흡기에 좋은 기능을 해준다니 약대신 이것이라도 먹어둬야지 않겠나.

그기에다 체질적으로 폐허간실(肺虛肝實)의 전형적인 태음인 인지라 폐와 동일한 부분으로 분류되는 코,목,폐,항문,피부등은 평소에도 허하니 이것이라도 먹어두면 해로울 거야 없지않겠나 싶어 평소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더 먹고는 있다.도라지까지 한 뿌리 캐 먹을려니 노루꼬리만한 가을 낮이 아까워 거기까지는 하지못했다.

그 날은 해가 저물어 더 이상 일은 못하고 방을 따뜻하게한 후 양파즙을 1포 더 먹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아침에 일어나보니 따끔거리던 목도 편해졌고,띵하던 머리도 말끔해졌다.참으로 이상한 일이다.감기는 보통 약을 먹든 먹지않든

약 1주일정도 병과 더불어 지내야 했는데 하루 밤 사이에 말끔히 목감기 증세가 개선되었으니 참으로 신통한 일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배,양파와 따뜻한 방이 주효했는 것 같다. 

 

덕분에 낮에는 열심히 단감을 따고는 야간 박스포장 작업을 하면 되겠기에 낮 작업을 대강 마무리 할려는데  마누라가 읍내에 가서 통닭후라이드를 한 마리 해오란다.띵호와.. 

이렇게 좋은 안주감을 두고 술이 없으면 앙꼬없는 찐빵이요,여자없는 세상이라 생탁을 또 1병 사서 옆구리에 꿰차고는  신나게 차를 생생 몰아서 농장엘 왔다.

 

그 옛날 조조가 동탁을 하수(下手)하려다 실패한 후  진궁과 함께 도망을 가다가 여백사(呂伯奢)의 집에 들렀을 때에 여백사는 귀한 손님이 왔다하여 가노(家奴)들에게 돼지를 잡게한 후 저자거리로 말을 타고 박차를 가하여 가서 술을 한 항아리 사서는 말안장에 동여매고 집에 돌아 올 때의 흐뭇한 생각이 이와 같았을까,생각해 본다.

단지,여백사는 멀리서 오래만에 찾아온 지인이 반가워서인 것과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다르며,여백사는 말을 타고 달렸고,나는 자동차를 타고 달린것만 다른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배와 양파 덕분이라니, 내년에는 배나무에도 더 좋은 거름을 듬뿍 주고  양파도  더 많이 심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농막앞에 있는 백(흑)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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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기분 좋게 살려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을 기분 좋으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을 기분 좋으려면 새 옷을 사고

일년을  기분 좋으려면 결혼을 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이것도 일주일 정도 간격으로 목욕탕에가서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근 후 1시간여 동안 떼를 밀고 땀을 뺄 때 얘기이지 요즘은  목욕문화가 어느새 바뀌었는지 목욕탕 보다는 찜질방에 매일 가서는 로마시대에서와 같이 마사지 운동 수영 독서 등으로 시간을 보내든가 아니면 아예 사교장소로 활용하는 것 같다. 나는 양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체질적으로 물하고는 맞지가 않는 모양이다. 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다.두 아들이 어린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으나 애들이 독립적으로 목욕탕에 갈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샤워만을 해오고 있다.어쩌다가 친구들과 사우나에 갈 일이 있어도 대충 물칠만 하고는 바로 탕에서 나와서는 혼자서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실정이다.

 

아주 어릴적에는 물론 부모님께서 몸을 씻겨 주셨겠지만, 조금 자란 후부터는 여름에는 집앞 시냇가에서 물장구도 치고 목욕을 하였으며 겨울에는 그렇게 온전히 씻지않았던 모양이다.겨울 마다 때 때문에 손등이 갈라져 동상까지 겹치면 두부를 만들고난 후 남는 간수물에 손을 담그거나 아니면 배추김치 잎으로 손을 동여맨 후 화로불에 쪼이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체육이나 자유활동 시간에는 담임 선생님이 반 전체를 이끌고 학교앞 개울가에 가서 손,발, 목등의 때를 씻게 한후 때 검사를 실시하고, 불합격 판정시에는 다시 씻으라고 지시하곤 했다.때는 봄이라 손발이 시리는 것은 당연한데 까칠까칠한 돌맹이로 손등을 씻을 때에는 피가 날 때도 있었으며 그때의 따끔거렸던  것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는 시골이라 목욕탕에는 가지 못하고 마구간에 있는 소여물 끊이는 무쇠솥에 물을 데워서 호롱불 켜놓고 목욕을 하다가,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부터 목욕탕이라는 데를 가봤다.통학거리가 멀어 형님 친구집에 마침 빈방이 있어 그 집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그 집 아들이 같이 목욕탕에를 가자해서 따라 나섰다.미추왕능 옆 대림탕이라는 데를 갔다.한참 목욕을 잘 하다가 같이 간 집주인 아들이 여탕을 한 번 구경하잔다.그 당시 남탕과 여탕사이의 칸 막이는 사람 키 만큼만 되어 있었으며 수도 꼭지를 밟고 오라서면 건너 편이 보이도록 되었있다. 숙달된 조교가 먼저 시범을 보인후 나더러 따라 해 보란다.난생 처음 가본 목욕탕이라 그렇잖아도 무엇부터 먼저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어리둥절해 하는 데 시범까지 보이며 따라 해보라 하니 통과의례인 것으로 알고 따라 했다.그런데 희뿌연 안개 속에서도 모두들 등을 돌린체로 제할 일만 열심히 하는 것만 보였다. 남탕에 불량 청소년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아니면 경험적으로 남탕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안되다는 것을 터득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후 부터는 목욕탕에 가더라도  얌전히 목욕만하며 다녔는데 몇 달후에 보니 남탕과 여탕의 칸막이를 천정 끝까지 막아버린 것이 보였다.

 

몇일 전 조카, 즉 서울에 살고있는 둘째형의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날 시범을 보여주었던 형님 친구도 같은 버스를 탔다.이제는 그 날렵하던 몸매는 어디가고 흰 머리카락도 덤성덤성 몇개만 남아있고 그나마도 주변머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이빨도 몇개 빠졌는지 웃으니 금이빨도 보인다. 

만약 그때 목욕하던 여인중 한 사람이 흴끔 뒤돌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저 놈들이 목욕을 다 했으면 집에 얼런 가서 공무나 할 일이지, 위험하게 저게 무신 짓이고?"라고 안 했겠나 싶다 .

요즘은 해수욕장에서 지나가는 여인들의사진만 찍어도 야단들인데, 지금  만약에 목욕탕에서 그와 같은 짓을 했다하면 어찌할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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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의 최소단위 10개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 10명중 9명 정도는 모두 동일한 행동을 하고있다.즉,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책 읽는 사람은 아얘 없는 것 같다.학생들 조차도 책을 펴놓고 들여다보는 장면은 구경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차라리 낫다.길거리를 걸어다니면서,특히 보행자 신호시에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도로에서 조차 이놈을 들여다보는 보행자들 때문에 자동차 운전자들이 오히려 조심해야할 지경이다. 어린이 어른 구분할 것도 없이 손가락 움직이는 힘만 있으면 온통 스마트폰 들여다 보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된 것 같다. 

 

우리들 어린시절 만 하여도 가지고 놀만한 것은 공놀이,고무줄놀이,굴렁쇠굴리기,그리고 땅따먹기 등 다소 유치하지만 종류는 다양하였다.

그중에서도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땅따먹기 일명 탱굼치기 이다.

이것은 주로 놀이에 직접 참가하는 인원이 2명일 경우에 하곤 하였다.하기야 전쟁을 3개나라,4개나라가 할 수야 없지않겠는가? 2개나라를 앞 세워놓고 다른 나라는 2개나라를 자기들에게 이로운 나라편에 원군을 보내는데 그친 정도이다.

 

 

 

탱굼치기를 통한 땅따먹기 하는 방법을 간단히 소개한다.

우선 공(空)영토를 평평한 흙(학교운동장등)위에 한쪽 변(邊)의 길이가 1~2미터 정도 크기로 네모나게 그린후 각자 자기의 영토를 먼저 그린다.탱구는 물건(편의상 출격병이라 칭한다)은 깨어진 옹기조각이나 소주병뚜껑을 주로 사용한다.

A나라와 B나라가 번갈아 땅을 확보하는데 자기 진영안에서 출격병을 공영토로 내 보내는데 3회 진격후 본 진영에 귀환해야 성공하게되다.그러면 전리품으로 자기 손 1뼘 정도를 공영토의 짜투리나 모서리부분에 금을 그어 승자의 영토로 보태게 된다.이 때 간혹 공격적인 친구는 전리품 몫으로 상대편 모서리를 확보한후 다음 공격차례가 왔을 때 모서리 부분에  출격병을 보내어 귀환에 성공하면 공영토의 절반 정도를 자기영토로 확장하게된다. 

 

몇일 전 신문에 보니 필리핀과 대만 부근에 있는 암초 1개를 두고 일본이 오키노토리시마라는 이름의 자기들  섬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과 서로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하는 댜오위다오(센카쿠)와 연결하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맨땅에 꼬챙이로 금을 그어 사금파리 1개로 땅따먹기 하던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기원전 손무 선생이 병법의 진법을 완성하여 정리한 손자병법에도 이렇게 많이 남는 장사는 기록에 안 보인다.기껏해야 멀리있는 나라와 화친을 맺어놓고 가까운 나라를 집어삼키는 원교근공(遠交近攻)만 보일 뿐이다. 

여씨춘추를 편찬한 중국의 여불위라는 사람은  장사중에는 사람장사가 이문이 제일 많이 남는다 했는데,이번 경우와 비교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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