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기분 좋게 살려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을 기분 좋으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을 기분 좋으려면 새 옷을 사고
일년을 기분 좋으려면 결혼을 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이것도 일주일 정도 간격으로 목욕탕에가서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근 후 1시간여 동안 떼를 밀고 땀을 뺄 때 얘기이지 요즘은 목욕문화가 어느새 바뀌었는지 목욕탕 보다는 찜질방에 매일 가서는 로마시대에서와 같이 마사지 운동 수영 독서 등으로 시간을 보내든가 아니면 아예 사교장소로 활용하는 것 같다. 나는 양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체질적으로 물하고는 맞지가 않는 모양이다. 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다.두 아들이 어린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으나 애들이 독립적으로 목욕탕에 갈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샤워만을 해오고 있다.어쩌다가 친구들과 사우나에 갈 일이 있어도 대충 물칠만 하고는 바로 탕에서 나와서는 혼자서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실정이다.
아주 어릴적에는 물론 부모님께서 몸을 씻겨 주셨겠지만, 조금 자란 후부터는 여름에는 집앞 시냇가에서 물장구도 치고 목욕을 하였으며 겨울에는 그렇게 온전히 씻지않았던 모양이다.겨울 마다 때 때문에 손등이 갈라져 동상까지 겹치면 두부를 만들고난 후 남는 간수물에 손을 담그거나 아니면 배추김치 잎으로 손을 동여맨 후 화로불에 쪼이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체육이나 자유활동 시간에는 담임 선생님이 반 전체를 이끌고 학교앞 개울가에 가서 손,발, 목등의 때를 씻게 한후 때 검사를 실시하고, 불합격 판정시에는 다시 씻으라고 지시하곤 했다.때는 봄이라 손발이 시리는 것은 당연한데 까칠까칠한 돌맹이로 손등을 씻을 때에는 피가 날 때도 있었으며 그때의 따끔거렸던 것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는 시골이라 목욕탕에는 가지 못하고 마구간에 있는 소여물 끊이는 무쇠솥에 물을 데워서 호롱불 켜놓고 목욕을 하다가,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부터 목욕탕이라는 데를 가봤다.통학거리가 멀어 형님 친구집에 마침 빈방이 있어 그 집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그 집 아들이 같이 목욕탕에를 가자해서 따라 나섰다.미추왕능 옆 대림탕이라는 데를 갔다.한참 목욕을 잘 하다가 같이 간 집주인 아들이 여탕을 한 번 구경하잔다.그 당시 남탕과 여탕사이의 칸 막이는 사람 키 만큼만 되어 있었으며 수도 꼭지를 밟고 오라서면 건너 편이 보이도록 되었있다. 숙달된 조교가 먼저 시범을 보인후 나더러 따라 해 보란다.난생 처음 가본 목욕탕이라 그렇잖아도 무엇부터 먼저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어리둥절해 하는 데 시범까지 보이며 따라 해보라 하니 통과의례인 것으로 알고 따라 했다.그런데 희뿌연 안개 속에서도 모두들 등을 돌린체로 제할 일만 열심히 하는 것만 보였다. 남탕에 불량 청소년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아니면 경험적으로 남탕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안되다는 것을 터득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후 부터는 목욕탕에 가더라도 얌전히 목욕만하며 다녔는데 몇 달후에 보니 남탕과 여탕의 칸막이를 천정 끝까지 막아버린 것이 보였다.
몇일 전 조카, 즉 서울에 살고있는 둘째형의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날 시범을 보여주었던 형님 친구도 같은 버스를 탔다.이제는 그 날렵하던 몸매는 어디가고 흰 머리카락도 덤성덤성 몇개만 남아있고 그나마도 주변머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이빨도 몇개 빠졌는지 웃으니 금이빨도 보인다.
만약 그때 목욕하던 여인중 한 사람이 흴끔 뒤돌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저 놈들이 목욕을 다 했으면 집에 얼런 가서 공무나 할 일이지, 위험하게 저게 무신 짓이고?"라고 안 했겠나 싶다 .
요즘은 해수욕장에서 지나가는 여인들의사진만 찍어도 야단들인데, 지금 만약에 목욕탕에서 그와 같은 짓을 했다하면 어찌할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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