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전 어느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분이 남이섬 청소부 자리가 탐이나는데 도저히 취업이 안될 것 같아 3개월을 무료봉사 하는 조건으로 그 자리에 일을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일간 신문에선가 본 것이 생각난다.60을 전후한 우리 세대가 참으로 애매한 시기이다.다들 일중독까지는 아니어도  각자 자기자리에서는  열심히 활동을 하였는데 본의아니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와 마땅히 할 일도 없이 지낸다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하루 종일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힘드는 일이다.

 

5년전,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한 후 용역회사에서 인력관리 업무를 맡아 한것도 벌써 2개 회사를 거친 후 지금의 연령으로는 다시 취업한다는 것이  점점 그 가능성이 희박해지던 차에 ㅇㅇ교통공사에서 모집하는 지하철보안관 채용시험에 응모하여 합격이 되어 오늘에야 신체검사서등 최종 구비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지금 하고있는 단감농사는 수확철을 제외하면 그렇게 바쁠것도 없거니와 농한기에는 뚜렷이 할 일도 없던 차에 마침 잘 된 것 같다. 

하루 6시간씩 격일제로 근무하는 것이니 농장일과도 병행하면 그런대로 조화가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입사전형 경쟁율이 16대1이라니 합격하지 못한 일하고싶어하는 이들은 또 어떻게 될런지 신경이 쓰인다.

시간이 무료하다던가 사회에 봉사하는 기분으로  응시한 사람은 그나마 천천히 다른 길을 모색하면 되겠지만 당장 생활에 지장이 오는 형편이 어려운 서민층에게는 이만저만 난감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인터뷰등 신문보도 내용)

월 85만 원 시급제 모집에 구름같이 몰려든 '낀 세대'(55~65세)

부산교통公 '도시철도 보안관', 39명 뽑는데 633명 지원 16:1

- 경찰·공무원·공기업 출신 포함
- "퇴직 후 복지·일자리 소외 극심
- 이 정도 대우면 최고의 직장"

7일 오후 부산교통공사 2층 회의실에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중년 남성 10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들은 교통공사의 '도시철도 보안관' 채용 면접에 나선 참이었다. 면접관이 "도시철도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조치하겠느냐"고 묻자 응시자들은 도시철도 안전매뉴얼을 죄다 외운 듯 거침없이 답했다. 평소 체력 관리법을 묻는 말에도 "오랫동안 유도를 익혀 젊은이도 거뜬히 제압할 수 있다"며 자신감 넘치는 답변이 이어졌다. 

교통공사는 도시철도 열차와 역사 등지에서 잡상인을 단속하고, 범죄를 예방할 도시철도 보안관을 뽑는 면접전형을 오는 10일까지 시행한다. 대상은 만 55세 이상 65세 이하. 총 39명을 뽑는 이번 채용에 633명이 몰려 16.2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응시자 가운데 169명(26.7%)은 경찰 또는 일반 공무원 군인 교사 공사 및 공기업 출신이다. 사회복지사 소방안전관리사 공정관리기사 등 자격증을 여러 개 가진 이도 많았다.

도시철도 보안관은 격일제로 하루 6시간씩 일하고, 월급 85만7000원을 받는다. 얼핏 많지 않은 액수 같지만, 응시자들은 '낀 세대'가 구할 수 있는 직장 중 최고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만 55세 이상 65세 미만의 경우 정년퇴직이나 명퇴를 해 마땅한 소득이 없음에도 자녀 결혼 등 쓸 곳은 많다. '노인'으로는 분류되지 않아 연금 등 국가의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연령층이다. '꿈의 은퇴자금'으로 불리는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해도 매월 100만 원 안팎(세전)의 이자소득만 챙길 뿐이다. 공기업 부장으로 일하다 퇴직했다는 이모(59) 씨는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나이지만, 우리 또래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철도 보안관은 정말 좋은 일자리"라고 말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희망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이들을 면접장으로 이끌었다.

                              -이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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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고추값은 더 이상 이것을 재배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주지못했다.재작년까지 근당 2만원하다가 지난해에는 풍작으로  1만원으로 떨어진 것이 올해에도 지난 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매년 고추모종 200포기를 심으면 자급자족용 제하고 남는 것이 3~40근은 된다.이것을 젊은 시절 쌀가마니를  들다가 다쳐서 불편한 허리로 하나씩 따야 한다.그리고는 먼지등 불순물등을 깨끗이 닦아낸 다음 일주일 가량을 햇볕에 말려야 한다. 혹시 말리는 기간동안에 비라도 내리면 감당하기가 더 어럽다.이것을 또 팔려고 하면 혀꼬부라진 소리로 납짝 업드려 말을 꺼내어야 한다.그러면 어떤이는 시가에서,친정에서, 또는 사돈의 팔촌이 등등 모두가 고추타령이란다.올해에는 처형이 전량을 선뜻 사겠단다.지난 해 까지 손위 처남댁에서 구입을 해왔는데... 우리야 어차피 우리 먹을 것에서 남은 것이라 팔지못하여도 그만이지만 형제간에 단골을 가로채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그쪽(처남댁)에 사라고 하니 한사코 우리것을 달란다.하기야 모두들 초벌로 기계에서  건조시켜 마무리만 하루이틀 볕에 말리니 우리 것 하고야 비교가 되겠는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마누라가 처남댁에 안부전화차 하는 통화중에 그기에는 올해 고추농사를 병충해로 인하여 접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불편한 마음이 늦게나마 해소되었다.

 

 여름내내 몇개 달리지도 않았던 호박덩쿨에 서리가 내릴 때가 다가오면 왠 호박은 그리도 많이 맺히는지? 단감도 굶주리게 키워야 많이 열린다고 동네 이웃이  해준 얘기가 떠오른다.고추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풋고추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매달려 있다. 태양초 고추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데, 가을 볕에는 붉게 익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와서  너마져 천덕꾸러기가 될려고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이렇게 많이도 매달리느냐?

 

궁리 끝에 그냥 버리기 아까워 풋고추를 모두 따서 공판장에 보냈다.

모양이 쪽 곧은 것은 속을 파낸후 양념소를 넣어 고추 튀김용으로 하면 될테고 크기가 조금 작은 것은 국밥집 풋고추용으로가서 오뉴월 된장 단지에 풋고추 처박히듯 푹 찍어 먹는데 쓰여도 좋을 것도 같아서 이다.

그런데 경매결과는  역시 말도안되는 가격이다. 상하차비,경매비용 및 박스값을 제하면 손에 떨어지는 것이라고는 그냥 허허 웃어 넘기고 말 수준이다.

 

농작물이 풍년들면 농부들이 좋아해야 할 터인데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풍년이 드는 것이 농민들에게는 오히려 시름거리가 되고있는것이 현실이다.이나저나 생산자와 중간상인등 고추 이것만 붙들고 매달려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런지? 이제부터라도 고추만 붙들지 있지말고 다른 곳에도 매달리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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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처음으로 심어본 쥐눈이콩을 수확했다.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느 콩과는 달리 크기도 조그마하지만,광채를 발하는 것을  보면 볼수록 쥐의 눈과 흡사했다.

콩의 명칭도 다양하다.생각나는대로 적어보면 흰콩 검은콩

푸른콩 붉은콩,서리태 쥐눈이콩,강낭콩 울콩 작두콩등등 그 종류와 명칭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여가지가 있다. 

콩의 명칭만큼이나 콩을 재료로 만들어진 먹거리 또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우선 우리나라 식탁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된장 청국장을 비롯하여 정월에는 콩자반 여름에는 콩국수 가을에는 김장김치와 더불어 먹는 두부와 비지 일년내내 먹는 콩나물 초등학교시절 도시락채 흔들어 먹던 콩가루비빔밥 반찬으로는 콩조림 요리 보조용으로는 콩기름등등과 콩으로 지은 밥을 콩밥이라고 까지 부르고 있다.오늘 아침 밥상도  강낭콩밥이었다.색깔이 붉다.그러고 보니 일년내내 흰밥은 별로 기억에도 없다.

 

콩나물이 해장국의 주재료로 쓰이는 지방도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 덕유산인가에 등산을 한다해서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30여년 전 일이다. 부근 숙소에서 하루밤을 지낸후 그이튿날 산행을 하기전 아침에 해장국집을 찾았다.그런데, 콩나물 해장국 뿐이라해서 난감해한 적이 있었다.부산지역의 해장국은 시래기되장국 선지국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 좀 여유가 있을 때면 복어국 생대구탕등을 먹곤했는데 콩나물국이 해장국이라니,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으나 해장국집에 그것밖에 없다고하니 어쩔 수없이 먹은 기억이 있다.해장국은 뭐니뭐니해도 술마신 다음날 점심 때 먹는 해장국이 제일이다.회사근무 시절 구내식당을 이용하다가 어쩌다가 외부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었다.하필이면 메뉴가 복어국이다.옆 동료사원이 투덜댄다."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저녁에 술을 미리 마셔놓을 걸..."

뜨거운 국물을 식혀가며 후루룩 먹어면서도" 어, 시원하다" 고 한다. 전일 거나하게 술마신 다음 날, 점심 때 먹는 해장국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감옥에 가는 것을 두고 다른 말로 콩밥먹으러 간다고도    한다.

감옥살이를 끝내고 출소하는 사람에게는 두부를 먼저 먹인다.콩이 정말 다양하게 쓰인다.

청춘의 끊는 피를 주체하기 어려운 젊은 시절 콩밥을 먹어본 적이 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닭장 안이었다.전날 저녁 일들이 가물거린다. 직장에서 실시하는 2주간의 대전연수원 교육을 앞두고, 지금은 없어진 당시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태화백화점의 공간을 빌려 회사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전시회를 최종 준비해 놓은 공로를 치하한다는 명목으로 직장 선배,동료들이 준비해준 회식자리였다. 자연 술잔은 나에게로 집중되어 한계선을 넘었던 모양이었다.새벽 즉결재판정으로 가는 닭장차에서 조차 두꺼비 그림이 있는 종이팩 소주가 손과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패스되었다.물론 나 역시 목을 축인것은 당연하다. 재판정에 도착하여 눈을 들어보니 제법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정면 단상 앞에 나타났다.생전 처음 보는 판사란다."직업은? 왜 여기 왔느지 아느냐? "등 기초적인 신문을 한 다음 판결을 내렸다."구류 5일, 단 3일은 현금으로 대체한다." "휴우 ~   ,이제 살았다. 월요일 부터 시작되는 교육에는 지장이 없겠구나." 천만 다행이다. 

 

옷을 완전히 벗고 신체검사를 실시한 후 미결수들을 감금하는 닭장에를 들어갔다.전투경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눕지도 말고, 떠들지도 말고 자기말에 순종하라고...

경위도 아니고 순경도 아니고 의무경찰이 그렇게 무서운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보리쌀 알맹이와 흰콩알이 섞여 있는  

도시락과 쉰내 나는 김치와 다꾸왕 몇 조각이다.

알갱이들이 제멋대로여서  젓가락으로는 먹을 수 없다.

입에 들어가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점심 때가 되니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다.아침과 같은 콩밥이 배식되었다.한 도시락 모두다 비웠다.옆에 있는 칸막이도 없는 변소도 아랑곳 없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오래된 방장이 설명을 해준다.

저기 앞에 보이는 닭장에 혼자 갇혀있는 외로운 여인은 간통죄로 들어왔단다.강력범에 해당하므로 독방에 배치되었단다.

여기 오기전 간통 상대남자와 지낼 때에는 어떻게 지냈을까? 봄철 남풍이 불듯 분위기가 따듯했을까? 얼마나 오붓하고 정다운 시간을 보냈을까?

그런데 둘이 지낼 때에는 매우 정분이 났을 텐데 어째서 일반 잡법이 아니고 이름도 무시무시한 강력범에 해당할까?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았다.

어쨋거나 언도 받은 2일치 콩밥을 잘 먹고 나와서 계획된 연수과정을 수료하고 이듬해 승진도 하였다.

 

"내일 모레 비가 온다는 데, 나머지 콩은 비닐하우스에 빨리 안 옮기고 뭐하고 있노?" 마누라의 지적에 제정신이 돌아왔다. 맞다. 나는 지금 털다 남은 콩을 어둡기전에 옮겨야제.

 

                        "치바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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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종합검진을 받았다.여태껏 시력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그런데 왼쪽 눈이 오른쪽에 비해 현저히 시력이 약해졌다고,간호사가 지적해 주길래 지난해 까지는 양쪽이 모두 비슷했다고 하니 다시 측정해 보잔다.  

다시 해봐도 역시 왼쪽이 좀 부실한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니,최근 실업급여 받는 중이라 여유시간이 좀 많아 컴앞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과,단감농장에서 농약을 살포할 때 나뭇잎에 맺힌 농약이 어쩌다가 한번씩 왼쪽 눈에 한,두방울씩 튀어들어간 것 말고는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는 것 같다.눈에 커텐 드리우는  현상만 아닌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겠다.눈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

밖에 외출할 때면 땅도 보고,하늘도 보고,지나가는 사람도 보는데,제발 정상대로 돌아와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은근히 빌어본다.

 

오늘은 마누라와 같이 집 근처에 있는 시장엘 걸어서 다녀왔다. 물건을 흥정할 때 서로간의 성격 불일치로 짜증을 낸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태껏 한번도 하지않은 말을 한마디 했다. "젊은 사람이고 나이든 사람이고 간에 여자가 지나가면,왜 빤히 쳐다보느냐?"고...

이 아지매가 천리안을 가졌나?  투명눈을 가졌나? 

뒤에 따라 오면서 남의 눈알 굴리는 것을 어떻게 알고?

 

40여년 전,해군신병훈련소 훈병시절 담넘어 운전교육병들이 담넘어로  던저준 담배 한까치를 전우들과 한 모금씩 돌려가며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훈련소 조교가 하던 얘기가 생각난다."제군들,지금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 봐라! 자갈마당에 구루마 동태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똑바로 보란 말이야!" 그때 눈동자 굴리면 안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처음이다.견디기 힘든다는 갱년기도 벌써 다 지났는데.....

이제는, 아예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의 균형자체가 흐트러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안 하던 소리를 다 하는 것을 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쳐다 보게 마련이고, 이왕이면 남자 보다는 여자에게 눈길이 가게 마련이고, 같은 여자라도 이쁜 여자에게....헤어스타일과 발끝 중에서도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그러면 앞으로 눈을 감고 걸어야 하나? 마누라 왈"그렇게 처다보면 상대방이 싫어한다고..."

 

남이 쳐다보는 것을 싫어하면,얼굴에 화장은 왜 하는 것이며,옷은 왜 값나가는, 비싸고 멋있는 옷을 껴입고 다니느냐고?  또 다리 예쁜 애들은 치마는 왜 짧은 것을 입고 다니느냐고? 다른 사람이 쳐다보는 것이 싫으면,집에 있을 때, 방안에서만 멋을 내다가 외출할 때에는 긴바지에다 얼굴에는 이슬람 여인처럼 히잡을 쓰고 나와야지 않겠나? 그리고,모처럼 폼 잡는답시고 신경쓰서 입고 나왔는데 아무도 봐주는 이 없으면,금으로 치장된 비단옷을 입고 어두운 밤길을 걷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보기싫어 외면하는 경우도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젊고 나이들고의  구분없이,뒷모습만 보고는 정말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옷차림이 용감해 졌다.

천 값이 비싸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치마가 짧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품을 솔게해서 윤곽을 너무 뚜렸하게 나태내어 보이니, 지나가는 내가 더 민망할 때도 있다.

특히,   연령적으로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여성의 경우에는

할 말을 잊게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에 시장에 갈 때에, 한번 더 같은 얘기를 하면 썬그라스라도 한개 사달라고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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